2014년 5월 13일 화요일

허리 굽은 노인

허리 굽은 노인이 길을 가고 있습니다
노인을 바라보는 이들도 허리가 굽었습니다
 
높은 언덕을 넘어 마을을 찾아들고 있습니다
언덕을 넘다가 터를 잡고 멈춘 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두 모이고 있습니다
머리가 하얗고 허리 굽은 노인들이 모여들고 있습니다
 
마을 뒷산에는 뻐꾹새가 울고
들판에서는 뜸부기가 울어제킵니다
 
모두 모여
한바탕 잔치를 하려나 봅니다

어머님 산소 앞에서

어머님 산소 앞에 무릎을 꿇고서
실컷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산
골짜기들이 덩달아 울어주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 때문이 아닙니다
어머니에게 지은 잘못 때문이 아닙니다

내 발이 너무 더러워
내 입이 너무 더러워
내 손이 너무 더러워
내 마음이 너무 더러워

어머니 계신 그 곳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일까
사랑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마음속에 속삭임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를 그리워하지 말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라

나도 내 어머니 무덤 앞에서
그렇게 위로를 받았단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누구일까
어깨를 만지는 따스한 손

아 그것은 주님의 사랑
따스한 가을 햇살이었습니다
........................................
*어머니 소천 7개월/성묘

2008.10.14.

계절의 유감

가을을 기다리는 사람들 틈새에
여름이 자리잡고 떠나지 않는다

타작을 기다리는 도리깨의 마음 곁엔
아직도 식지 않는 가을의 논바닥

겨울바람은 북에서 오지 않고
아름다운 나라의 돈더미를 타고 왔다

가을 추수를 기다리는 마음들을
온통 헝클어 놓고 말았으니


이 뒤죽박죽의 계절에
.....................................................
*여름같은 가을과
미국 발 세계의 경제 위기를 보면서


2008.10.9.

새삼스러운 아쉬움

부지런히 스쳐 지나가는 신사
뒷 모습이 낯익다
앞에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부지런히 걷고 있다

내 궁금증을 그의 어깨에 얹고
조용히 따라가 보았다

그가 가고 있는 곳에서
은은한 향기가 날려오고 있다
여인일까?

아, 봄처녀!
모두에게 희망을 주던 아름다운 그녀

봄도 여름도 다 지나고
가을 추수가 한참인데
이제사 새삼스리 봄을 그리워하다니

급히 내 곁을 스쳐 지나간 신사
그는 바로 나의 아쉬움이었어라

2008.10.4.

낮에 밤 이야기

어두운 장막을 걷고 보니
온 하늘에 별의 바다

반짝반짝 보일듯 보일듯
반가운 그 별들

별이 보이는 밤은
즐거운 밤이다

마음 속 깊이 스미는
별들의 이야기

어두운 장막을 여닫는
또 하나의 손이 있기에 

2008.9.17.

한가위

들뜨려는 마음을 붙잡아
베드로 바위에 꽁꽁  묶어놓고서

팔월 한가위 둥그스럼한 달빛을
품게 해줄까봐

찾으러 달려가는 사람들과
참고 기다리는 사람들을 위하여 

2008.9.13.

어떤 기다림

나무를 심지 않은 사람은
기다릴 것이 없다
꽃도 볼 수 없고 열매도 없으며
꽃을 사랑하는 벌나비와
열매를 즐기는 새들과 다람쥐도 볼 수 없다

나무를 심었는데
꽃이 피지 않으랴
꽃이 피었는데
열매가 없으랴

뜨거운 태양을 견디고
폭풍우를 지나고 나면
높은 가을 하늘 아래
탐스러운 열매가 가득하리니

지금 나무를 심는 사람은
늦은 봄처럼 살아가면서
다른 여름과 가을을 기다려
또 하나 새로운 열매를 기다려야 하려니와

2008.9.4.

아침에(2)

이른 아침
우거진 녹음이 기도원 창문을 기웃거릴 때
가만히 그의 모습을 살펴보니
군데군데 때 이른 낙엽이 섞이었다
여름이 채 가시지 않은 가을의 먼발치에서
어느새 낙엽이라니

그럴 리가?
내 눈을 의심하며 낙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
그것은 낙엽이 아니었다
막 익기 시작한 나무들의 열매였다
그러면 그렇지....

울울창창 녹색의 나무들은
모두 열매를 맺고 있었다
큰 나무 작은 나무
굵은 나무 가느다란 나무
늙은 나무 젊은 나무
무릇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몸에 그 열매를 맺고 있었다

앗불싸
부끄러워라

바라보고 있는 서로의 모습 중에
아직 열매를  준비 못한 것은
단풍인 듯 눈속임하며 얼굴을 붉히고 있는
나의 모습 뿐이 어니와
...............................................................
*일영연수원에서 SWE 25기(여)가 있었습니다.

2008.8.29.

아침에

아침은 주님의 선물이다
어두움을 밝히는 빛으로 인하여
어두움을 깨달을 수 있다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는 어두움과
빛을 밝히기를 거절하는 불순종은
아침을 맞이할 수가 없다

흑암이 깊은 곳에 빛이 있어
깊음과 흑암을 보게 하리니
주님의 은혜로
................................................
*창세기 1장의 묵상


2008.8.28.

어떤 遺産(유산)

가난한 이가 遺産(유산)을 남겼습니다
눈물을 씹어삼키는 忍耐(인내)를 남겨놓았습니다

온유한 이가 遺産(유산)을 남겼습니다
온 세상을 품을 수 있는 寬容(관용)을 남겨놓았습니다

의를 사랑하는 이가 遺産(유산)을 남겼습니다
일곱번 너머져도 여덟번 일어나는 勇氣(용기)를 남겨놓았습니다

너절한 옷차림의 바보같은 이가 遺産(유산)을 남겼습니다
하늘과 땅을 바라볼 수 있는 眼目(안목)을 남겨놓았습니다

우리가 遺産(유산)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지금 깊이깊이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2008.8.24.

여름 장마를 맞이하면서

이번 여름 장마에는 인내를 길러야겠다
내리고 또 내리는 비를 흠뻑 맞으며
그 물 속에 깊이 잠겨 보아야겠다

이번 여름 장마에는 마음을 닦아야겠다
한 없이 흐르는 강과 계곡을 바라보며
세월의 흐름 속에 내 머리 속을 헹궈야겠다

이번 여름 장마에는 믿음을 길러야겠다
두 팔을 한껏 벌리고 그 물들을 받아
내 믿음의 뿌리에 깊이깊이 저장하여야겠다

이번 장마에는
실수하지 않으리


2008.7.24.

신기한 나뭇잎

동이 튼 새벽
연수원 창가로 내다보이는 숲엔

큼직큼직한 진초록의 얼굴들이
나뭇잎처럼 펼쳐있다

언제 그렇게 자랐을까

밤 사이
훌쩍 커버린 그들

싱글벙글 아침햇살을 맞이하며
이야기 꽃이 한참이다

유난히도 커보이는
대견스러운 나뭇잎들

하나 둘 셋 넷
스물 다섯 잎사귀

기쁨과 용기를 보람에 싸들고
저녁 바람을 기다려
급행으로 떠나들 가다
...........................................
*제1기 크리셀리스가
일영연수원에서 있었습니다.

2008.7.23.

오늘 아침의 명상

하나님을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얼굴

하나님을 만나고 싶을 때면
나타나는 얼굴

선한 사마리아 사람일까
모세가 본 떨기나무의 불꽃일까

그리고
나는 누구일까

2008.7.19.

죽음과 그 이후

이별이 아니라 만남입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죽었다고 말하지만
그분은 방금 주님과 만났습니다

세상 만물은 시작과 끝이 있지만
주님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펼쳐놓은
영원 속에 계신 분입니다

보고싶은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에 돌아가신 분들입니다
우리도 언젠가 그곳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
*어느 교우의 소천을 보고

2008.7.15.

요즘 더위

너무 그늘진 곳이 많아
햇님이 그들을 찾아 나섰다

숨기고 있던 모습이 너무 부끄러워
고개를 못들고 도망가는 이들에게

밝은 빛
뜨겁게뜨겁게
더 가까이 다가서더니

2008.7.9.

노년의 쉼표

아직도 갈 길이 먼 나그네
어느듯 서산에 해는 지고
땅거미가 턱밑에 와서 재촉한다

휘휘 힘차게 팔 휘드르며
본향집 떠난지 불과 70여리 안팎
벌써 팔 다리가 아프고 눈도 침침하다

산을 넘으며
온갖 산새들과 작은 짐승들과 나무와 풀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바위에 대하여, 샘물에 대하여, 바람에 대하여

들을 지나며
꽃과 벌나비와 벼이삭과 들짐승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에 대하여, 바다에 대하여, 전쟁과 평화에 대하여

하늘을 보고
해와 달과 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월에 대하여, 희망에 대하여,

땅을 보고
너와 나와 그들과 만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랑에 대하여, 미움에 대하여, 질투에 대하여
그리고 희생과 용서에 대하여

지금 생각해 본다
나는 무엇을 보았는가
나는 무엇을 알았는가


2008.7.7.

一淸橋(일청교)


하나의 맑은 다리 되어
주님을 건네드리고 싶다

하나의 맑은 다리 되어
주님을 만나게 해드리고 싶다

이 다리에 오는 사람들마다
마음을 씻고 눈이 밝아져
모두
주님을 뵈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깊은 산중 험한 초로에
주막처럼 버티고 서있는
깨끗하고 반가운 다리가 되고 싶다


*삼청공원 입구에서 첫번째 만나는 다리가
 一淸橋(일청교)입니다.

2008.7.6.

생명의 뿌리

아름답고 화려한 꽃이 되어볼까
산새들도 탐내지 않는 못난 열매가 될까

온갖 상처로 볼품없는 나무줄기와
보이지 않는 땅속 깊은 곳에서는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땀 흘림이 한참이다

물을 찾아 헤메이는 처절한 발걸음이여
징그러운 벌레들의 용트림이여

하늘과 땅에는 나뭇잎들의 희생이 가득하고
천지에는 그들의 사랑으로 충만하다

꽃이 되랴 열매가 되랴
나뭇잎이 되어 썩으랴

땅 속에 있는 자들은 아무것도 모른 척
여전히 물을 길어 나르는 소리 숨차다

2008.6.28.

기도원에서

진 초록의 수풀을 열고 들어가
십자가 주위에 삥둘러앉아 고개를 비틀며

하늘 보고 땅 보고
너를 보고 나를 보고
생각해 본다.

그럴 수가 그럴 수가
그럴 수가 있을까

나를 죽이는 자를
용서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정말
축복할 수 있는 것일까


정말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일까
..........................................
*SWE 24기/일영연수원에서

2008.6.28.

良心의 話頭

햇볕 쏟아지는 숲속 그늘은
버티고 서있는 나무들의 사랑이라

사명을 다하고 숨진지 오랜 가랑닢들 쌓여
포근한 방석을 만들어 주고

하루살이와 모기와 파리 떼지어 왱왱거리는 소리는
무슨 권리로 이곳을 차지하려느냐는 물음표

이 세상에 살아있는 존재들에게
이 세상에 삶이 없는 존재들에게
내 良心의 話頭는 새 고민을 만들고 있다

이 세상의 존재인 너는
그들에게 무슨 도움을 주고 있는가

2008.6.23.

늙은 날개짓

낡은 날개로 한껏 솟아올라
발 아래 세상을 향하여 소리지른다

바람아 불어라
강물아 흘러라
세월아 힘껏 달음질 해보아라


화려한 날개를 펼친 눈에서 쏟아지는
저 불빛이여

그는 늙어 날개짓 할 힘이 없다
다만 경험으로 살아간다

바람은 어디에서 불어오는지
기회는 어느곳으로 날아가는지

그는 그냥 흘려 보내지 않는다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따라 멋있게 날아가고 있다


2008.6.18.

다듬어지지 않은 개울가의 돌

다듬어지지 않은 개울가의 돌이
더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흉한 몰골의 바리새인들 때문이리라

다듬어지지 않은 더러운 마음에
금은보석으로 치장한 옷이
무슨 소용있으랴

다음어지지 않은 개울가의 돌
마치
목수로 태어난 우리 주님의 웃음이어라

꿈이 있어
다른 세상에 살 수 있음이
얼마나 행복한 또 하나의 희망이랴


2008.6.13.

사랑 이야기

나비에게 속삭였습니다
나비야 나비야
그분이 너를 사랑한단다

참새에게 일러주었습니다
참새야 참새야
그분이 너를 사랑한단다

구름에게 목청껏 소리질렀습니다
구름아 구름아
그분이 너를 사랑한단다

나비가 희희덕거렸습니다
알아요 알아요
그분은 당신도 사랑하고 있답니다

참새가 종알거렸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그분은 당신도 사랑하고 있답니다

구름은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며
말 없이 웃고만 있었습니다

감격해서 흘리는 구름의 눈물일까
벼란간 쏟아지는 소낙비

언제부터인가
그분이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서산에 내려 쉬다가 동산에 떠오르며
밤새 엿듯고 가나봅니다

2008.6.10.

오늘의 믿음

비가 오려나
잔뜩 찌프린 하늘

그러나
나는 믿는다
어두운 하늘 위에는
여전히 푸른 하늘이 있음을

걱정과 근심이 안개같이 몰려와
내 시야를 가리려 하여도

푸른 하늘 그 위에 있는
둥글고 밝은 태양이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나는 믿고 있다

2008.6.9.

십자가들의 눈물

십자가를 쌓아놓고 장난질 한다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재미있어들 한다
의미는 아무 상관이 없다

큰 십자가, 작은 십자가, 나무 십자가, 쇠 십자가
목에, 가슴에, 벽에 , 지붕에 문패처럼 매달아 놓고
장난감인양 주물럭거리며 딴짓거리들을 한다

십자가가 눈물을 흘린다
몸을 부르르 떨며 한 숨을 쉰다

이럴수가
이럴수가

모든 사람들이 눈을 감고 깊이 잠든 밤
동뎅이처버린 십자가들
조용히 일어나 예배당에 모인다

2008.6.5.

긴 이야기

여름 내 그 숲에서 기도를 하더니만
모습이 나무를 닮다가 나무가 되었다
청계산인지 천보산인지 삼각산인지
나무 곁에서 살다가 나무가 되었다

숲은 다 알고 있다
여름 내 그 여인이 쏟아놓은 이야기들을

나무 잎새마다 가지마다 등걸마다
숨겨진 이야기 보따리들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와도
가을과 겨울이 가고 봄이 와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몇바퀴 돌아도

나무가 된 여인은
늘 그자리에서 기도를 하고 있다
누가 듣고 있는지 아는지 모르는지

소리 소리 피어올라 하늘에 닿았고
하늘 구름 가다가 멈추어
나무에 나려본다

무슨 일일까

나무가 알 수 있으랴
구름이 알 수 있으랴
나무와 의논한 구름 다시 하늘에 올라

뭉게뭉게 이야기 저야기
손짓으로 발짓으로
알듯 모를듯 구름의 언어


2008.6.4.

주님의 음성

네 마음이 떠나 있을 때에도
나는 네 마음 속에 있었고
네가 나를 멀리하였을 때에는
네 그림자가 되어 곁에 있었다

네가 눈물흘릴 때
네 눈물을 내 가슴에 담았고
네가 울부짖을 때
네 소리 내 귀에 각인하였다

사랑하는 사람아
내 피로 산 사랑하는 사람아

하늘 문이 활짝 열리고
하늘의 온갖 별들이 떨어지는 날
나 그 문 앞에서
너를 반겨 안아주리라

(수유리 영락기도원에서)
2006.1.24.

바보가 되자

바보가 되자
바보스럽게 매를 맞다가 끔직하게 죽은
바보같은 그분의 말대로 살아가보자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가면서도
죽인 자들을 위하여
바보스럽게 기도해 주시던 분

바보같이 그분의 약속을 믿어보자
비록 볼 수도 없고 알 수도 없지만
그냥 바보같이 견디며 기다려보자

천둥번개 치고 별빛 하나 없는
캄캄하고 긴 세월의 터널 속에서도
영혼 깊은 곳에는 언제나 한 밝음이 비취려니와

2008.6.1.

진실

절망이란 내 마음 속에 있다
두 뼘도 채 안되는 이 가슴 속에
모든 것을 담으려 하기 때문에...

고난은 내 머리 속에 있다
한 뼘 조금 넘는 그 것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노력 때문에..

그러나 정작 큰 고통은
내 믿음 속에 있다
피조물 다웁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과신하고 있는 혼자의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 보려는 만용 때문에...

-새벽을 잉태한 밤 중에서-

기독교인

주변머리 하나 없이 가난해 보이는
궁상스러워 보이는 그 모습 속에
함부로 처다보기조차 어려운
경건함이 있다

축쳐진 어깨와 꼬부라진 허리
떨어질 듯 간신히 얹혀있는 머리 속에는
세상을 부수고 다시 반죽하여 새 세상을 만들
경륜이 있다

아무도 거들떠 보려하지 않는 가랑잎
그러나 광풍폭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1억5천만년을 견딘 북한산 백운대 보다도 더 든든한
거룩함이 있다

눈을 뜬 자만
발견할 수 있는


2008.5.27.